전체 글 539

이명

나는 잠에서 깼다. 꿈에서 들린 이명 때문에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해 보니 내가 꿈에서 이명을 ‘들었던가?’ 싶다. 꿈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도 느껴지고는 한다. 그래서 나는 꿈에서 이명을 들었는가? 내 귀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꿈에서 고막을 때리는 지독한 이명 때문에 고통스러워 잠에서 깨진 않았다. 나는 잠에서 깼다. 보이지 않는 소리는 참으로 강력하다. 정말로 들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익숙하다면 소리는 고막에 닿지 않더라도 들리고는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명을 보았는가? 아니. 나는 한번도 그것을 본 적이 없다.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꿈에서 무엇을 본 것이지? 나는 잠에서 깼다.

일상다반사 2021.12.17

밤낚시

베란다에 들어가더니 한참을 부스럭 거리다가 짐을 하나 둘 꺼내오기 시작한다. 뭘 하려는가 보니 여태 하나 둘 사 모았던 낚시대를 전부 다 꺼내고, 내가 '여기 혼자 들어가서 뭐하려고?' 라고 물었던 작은 텐트도 꺼낸다. 등산 가방에는 이미 에어매트리스와 침낭도 하나씩 들어있었는데, 남은 공간에 랜턴이랑 보온병 그리고 평소엔 읽지도 않던 책까지 한권까지 넣는다. 본인 몸집만한 짐이 두개나 있어 들고 갈수나 있을까 싶은데 아직 먹을건 챙기지도 않았다. "낚시 하고 올게." "먹을건 안챙겨도 돼?" "방금 저녁 먹었으니까 괜찮아. 가다가 편의점에서 간식거리 좀 만 사서 가면 돼." "어디로 가는데?" "그냥 가다가 자리 있으면 자리 잡는거지. 내일 아침에 올게." 도대체 아무것도 없는 강에, 캄캄해서 아무것도..

일상다반사 2021.12.17

경치 한 모금

멋진 풍경을 보고 있자면 말이지. 이상하게 담배 한모금이 생각 난단 말야. 담배 한대 태우면서.. 멍하니 그냥 그 풍경을 바라 보고 있는게.. 내가 좋아하는 감상의 태도랄까. 사실 담배가 아니라도 무엇이라도 입에 물고 있는게 좋은거 같기도 해. 술 한잔이나 커피 한잔도 괜찮거든.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다른것 같아. 좋은 경치에 따라 오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면 맑은 공기거든. 도시 야경을 보면서 담배 한모금이 떠오르진 않아. 술 한잔이 생각나지. 하지만 등산 후에는 이상하게 담배 한모금이 생각나. 그 맑은 공기를 탁하게 만들어버리는 비린 담배 한모금이 말야. 그제서야 이게 현실이라는걸 깨닫는거야.

일상다반사 2021.12.17

길 잃은 개. 장준영

- 집 밖으로 나와 어디를 가던간에 매번 꼬옥 챙기는 것이 있다면 그건 '집 열쇠' 였다. 집 근처에 잠깐 산책을 나갈 때도,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외국생활에도 크게 쓸모 없었던 열쇠 하나를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건 내가 돌아 갈 수 있는 곳을 알려주는 작은 징표였고, 다르게는 나의 존재의 기원을 알려주던 상징이었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작은 열쇠 하나만으로도 내가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간에 어떤 상황에서도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정서적 위로는 낯선 길을 걷다 서늘한 바람을 들이 마쉴때 마저도 안정감을 주었다. '집'이라는 단어. 그 한 글자의 단어에 담긴 힘이 얼마나큰 안도와 위안을 주는지 깨달아 본 적이 있는가. 정처 없이 길을 걷고 헤메이다 해가 넘어갈 무렵 사방이 막힌 벽과 비를 피..

일상의 가려진 부분

무심코 지나가는 부분들이 있다. 이 세상에 당연한건 없다고 말하면서도 이젠 너무 깊숙이 들어와 일상이 되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아침에 일어나 씻고 나올 때 눈을 뜨고 보지 않아도 손을 뻗으면 걸려 있던 수건. 출근 시간에 교통카드를 찍고 열린 개촬구를 지나 탔던 지하철. 매일 볶은 원두 냄새를 가득히 머금고 있던 커피숍.

일상다반사 2021.12.17

2017년 11월 24일, 눈이 그친 새벽 2시

신나게 내리던 눈을 맞으러 나갔던 날이 정확하게 언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눈이 펑펑 내릴 때면 그 날의 즐거웠던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새카만 하늘 아래 새하얗게 떨어지는 눈송이들이 카메라 렌즈 위에 쌓이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기분에 셔터를 눌러댔다.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수는 없겠지만, 오늘도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컷과 함께 기분 좋은 눈을 맞고 돌아왔다.

일상다반사 2021.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