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밤낚시

MUSON 2021. 12. 17. 02:16

양평 2018

베란다에 들어가더니 한참을 부스럭 거리다가 짐을 하나 둘 꺼내오기 시작한다.
뭘 하려는가 보니 여태 하나 둘 사 모았던 낚시대를 전부 다 꺼내고, 내가 '여기 혼자 들어가서 뭐하려고?' 라고 물었던 작은 텐트도 꺼낸다.
등산 가방에는 이미 에어매트리스와 침낭도 하나씩 들어있었는데, 남은 공간에 랜턴이랑 보온병 그리고 평소엔 읽지도 않던 책까지 한권까지 넣는다.
본인 몸집만한 짐이 두개나 있어 들고 갈수나 있을까 싶은데 아직 먹을건 챙기지도 않았다.

"낚시 하고 올게."

"먹을건 안챙겨도 돼?"

"방금 저녁 먹었으니까 괜찮아. 가다가 편의점에서 간식거리 좀 만 사서 가면 돼."

"어디로 가는데?"

"그냥 가다가 자리 있으면 자리 잡는거지. 내일 아침에 올게."

도대체 아무것도 없는 강에, 캄캄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굳이 낚시를 가겠다고 하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스박스를 챙겨가서 물고기를 잡아오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어망 하나 챙겨서 잡히는 물고기가 있으면 잘 담아둔 뒤에 풀어주고 오는 것 같았다.
가져오는거라곤 읽다 만 책과, 다 먹은 커피 믹스 봉지, 그리고 편의점에서 샀을것 같은 빵 포장지 한두개가 전부였다.

밤낚시는 어땠는지 물어보면 언제나 물고기를 몇마리 잡았는지 이야기 해주고는 말았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날에도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평소와 같이 이야기했다.
가로등 빛 마저도 닿지 않는 곳에서 그는 그냥 텐트 안에 조용히 앉아 낚시대만 바라보고 왔다 했다.
어쩔땐 잠깐 졸다가 낚시대가 흔들리는걸 보고는 다가갔는데 그새 물고기가 도망가서 놓쳐 버렸다거나.
왠일로 낚시대 여러개가 다 같이 흔들려서 나가봤는데 알고보니 조그마한 동물이 낚시대를 흔들고 지나간거 이외에는 별 일이 없었다.

그래도 집에 있을 때면 낚싯대를 정성스레 손질하고, 해가 좋은 날엔 텐트가 잘 말랐다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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