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겼었던 것/책

앵무새죽이기 (To killing a Mockingbird) ㅡ 하퍼 리 저/김욱동 역

MUSON 2019. 4. 9. 23:11

하퍼 리의 타계 3주기를 맞아 예스24에서 양장 특별판이 나왔다.

한 번은 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커버가 예뻐서 바로 샀다.

예쁜 양장 책! 하지만 열린 책들에서 나오고 있는 일반판 책에 있는 귀여운 마을 지도는 없다.

 

 

 

 

 

가끔 외국책들을 보고 있으면 이름이 꽤나 헷갈린다. 애칭을 쓰기도 하고, 이름이 아닌 성으로 부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런 걸 일일이 적어주는 친절한 작가는 없다. 출판사에서는 국내정서를 고려해서 짧게나마 적어주면 참 좋을 텐데! 이 책에서 나오는 주요인물들은 주로 성으로 불리는 동네 주민들이라 헷갈리는 일은 없지만 화자의 이름은 참고가 필요하다.

"진 루이즈 핀치" 일명 "스카웃"이라고 불리는 6살의 어린 화자다. 책에서는 약 3년의 시간이 흐른다. 책의 초반엔 스카웃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로 전개된다. 스카웃에게는 오빠인 "제러미 애티커스 핀치" 짧게 "젬" 이라는 4살 위의 오빠가 있다. 책이 끝나며 스카웃은 6살에서 9살로, 젬은 10살에서 13살이 된다.

 

책의 화자는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파수꾼보다 앵무새죽이기가 먼저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 파수꾼이 먼저 나왔다면 하퍼 리는 이 정도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아직 파수꾼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화자가 성인일 때보다 아동일 때 책이 더 쉽게 읽히는 건 사실이다. 6살이라는 나이는 이제야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나이이나 뭐가 옳고 그른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10살의 나이는 선과 악의 개념을 만들어가고 사회와 어울리기 시작하는 나이이다. 그러기에 스카웃의 시점에서 본 마을의 이야기는 또 다른 "안네의 일기"같다.

전반부에는 스카웃의 학교 이야기와 마을 이야기가 나온다. 새로 부임해온 선생님에게 친절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에 학교 친구들에 대해 설명해주고 마을의 이야기도 해주지만 선생님은 반대로 화를 내신다.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이해할 수 있지만 스카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스카웃은 메이콤에서 자란 아이라 그 모든 것이 당연했지만 외지에서 온 선생님은 그걸 '당연시'하고 있는 태도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후반부에는 재판 이야기가 나온다. 갑자기 왠 재판?이라고 생각됐지만 스카웃의 시점에서는 자세히 알 수 없었던 어른들의 일이었다. 하지만 큰 이야깃거리를 낳고 있는 이번 재판은 변호를 맡고 있는 아빠의 일도 있지만 그 재판의 결과 또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일이었다.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듯 당연하게 끝났지만 그 누구도 화를 내지 않았다. 

 

한마디로 앵무새 죽이기는 인권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국에서는 꽤나 영향력 있는 책으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하나의 고전으로 읽힐 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다.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인권은 흑인과 여자는 제외되었기 때문에 화두가 된 것이지만, 그보다 동양인은 고려 대상조차도 아니기 때문이다.

 

"커닝햄 집안 사람이라고요. 커닝햄 사람들은요, 무엇이든 갚을 수 없는 물건은 받지 않아요. 교회에서 주는 음식 바구니나 대용 지폐도요. 그 사람들은 어느 누구한테도 아무것도 받은 적이 없어요. 그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걸로 그럭저럭 살아간답니다."

 

"증인석에 서 있는 그 키 작은 사람이 근처 이웃들보다 조금일도 나은 점이 있다면, 잿물 비누에 아주 뜨거운 물로 빡빡 문지른다면 피부색이 희게 될 것이라는 사실뿐이었습니다."

 

"저는 지간 15년 동안 군청에 대고 저 깜둥이 동네를 쓸어버리라고 청원했습니다. 옆에 살기 위험스러울뿐더러 제가 가진 재산 가치를 떨어뜨린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다가 내가 깜짝 놀란 건 핀치네 집에서 일하고 있는 캘퍼니아 아줌마였다. 엄마의 빈자리를 캘퍼니아 아줌마가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집안일을 하다가도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내기도 하며 훈육시킨다. 아빠 애티커스 핀치는 캘퍼니아가 집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며 감사해한다. 나는 그러기에 핀치네 집안은 다른 집과 다르게 백인 가정부를 쓰는 건가 싶었다. '캘퍼니아' 라는 이름이 백인인지 흑인인지 내게는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나중에 그녀가 아이들을 데리고 흑인 교회에 가는 걸 보고는 그제야 흑인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백인과 흑인은 앉는 자리도 구별되어 떨어져 있었으며, 지나가다가 스치기만 해도 큰일 날 것처럼 구는 것이 이례적이었는데 그런 흑인 가정부가 금쪽같은 내 아이들을 가르치려들다니! 그 시대의 백인이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티커스 핀치는 그녀가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흑인 여자가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 시대의 남부에서의 인종차별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나로선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활동하기 전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였을지 예상만 할 뿐이다. 그런 사회 배경에서 애티커스 핀치의 행동은 정말로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동네 사람들도 모두 그는 집 안과 밖에서 하는 행동이 같으며 행동하는 것과 말이 일치하는 한마디로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2016)가 생각났다.

1950년대의 흑인 여성을 다룬 영화이다. 앵무새 죽이기보다는 조금 뒤의 시대이지만 여성과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했으며 흑인 여성에 대한 차별은 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히든 피겨스는 그 사회상을 우울하지 않게 담아낸 작품이다.

그러고보니 이 영화 또한 원작인 책이 있으며 앵무새 죽이기도 1962년에 영화화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