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겼었던 것/책

길 잃은 개 ㅡ 장준영

MUSON 2019. 1. 1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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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밖으로 나와 어디를 가던간에 매번 꼬옥 챙기는 것이 있다면 그건 '집 열쇠' 였다. 집 근처에 잠깐 산책을 나갈 때도,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외국생활에도 크게 쓸모 없었던 열쇠 하나를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건 내가 돌아 갈 수 있는 곳을 알려주는 작은 징표였고, 다르게는 나의 존재의 기원을 알려주던 상징이었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작은 열쇠 하나만으로도 내가 어디에 있던 무엇을 하던간에 어떤 상황에서도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정서적 위로는 낯선 길을 걷다 서늘한 바람을 들이 마쉴때 마저도 안정감을 주었다.

'집'이라는 단어. 그 한 글자의 단어에 담긴 힘이 얼마나큰 안도와 위안을 주는지 깨달아 본 적이 있는가. 정처 없이 길을 걷고 헤메이다 해가 넘어갈 무렵 사방이 막힌 벽과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있는 장소를 찾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이 넓은 땅에 발 붙일 곳이 하나 없다는 것 보다 마음을 내려놓을 곳 하나 없다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갈 곳이 없어 도망을 가는데도 도망 갈 곳 마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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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것은 내가 머무는 집이 존재한다는 전제조건 하에 이루어진다. 떠돌아 다니면서 사는 유목민이더라도 그들이 사는 터전에서 벗어난다면 여행을 다녀온다고 말 할 수 있겠지만 집 없이 길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곳에 간다고 여행이라고 칭하지 않는다ㅡ그들에겐 삶 자체가 여행이라 말 할수 있을 것이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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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샌가 우리나라에선 남녀노소 불문하고 우리 나라에서 해외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요즘 세대가 추구하는 워라밸ㅡ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Work and life balance 의 준말ㅡ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일년에 한번 정도 해외 여행을 갈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원하며 대형 서점의 여행 코너에 겹겹이 쌓인 여행책들을 보고 있자면 이제 여행이라는 것이 사람들이 사는데 있어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나 또한 여행을 좋아한다. 새로운 것을 보고 배우며, 내가 알 던 것과 다른 문화와 시각을 보게 되었을 때는 나의 사고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때문에 시간이 될 때마다 국내외를 불문하고하고 집을 떠나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다른 사람들이 쓴 여행기들을 보면 공감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아마 각자가 추구하는 바가 달라서겠지만서도 그 중에도 가장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본인이 겪었던 일은 다 좋은 일인 것 처럼 어려움 속에서도 다 길이 있었고 결국엔 극복했다는 토속적인 말들로 써내려간 글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글들을 담은 책들이 서점의 여행코너에 가득 진열되어 있을 때가 있는데, 나는 그 책들이 진열 되어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좋은게 좋은거지를 외치며 희망적인 메세지만을 전달하려는 판매전략과 나의 다른 경험들과 맞물려 한 없이 위선적으로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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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번 그 많은 여행기를 적은 책들 중에 보고 싶었던 책이 하나 있었다. 표지와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아 책이 갈곳을 잃고 잘못 꽂혀 있는건 아닌지 생각이 드는. 왠지 모르게 연민을 일으키는 제목의 책이 있었는데 열어보고 나니 내가 블로그로 잠깐 잠깐씩 봐왔던 그의 책이란걸 알았다.

 

'길 잃은 개'

 

소설책도 아니면서 여행 코너에 있는 책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다. 지역별 문화와 전통을 설명하고 맛집들을 소개하며 즐겁게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나열 했던 책들 사이에서 왠 히피 한명이 여행기라고 책을 내놓은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전에 그 내용을 작가의 블로그에서 먼저 접했다. 우연찮은 계기로 그의 여행기를 접했고, 작가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알면 알 수록ㅡ그가 여행하며 쓴 글들을 읽으면서ㅡ 히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이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ㅋㅋ

그의 목적은 '죽기 위해'서였다. 보통의 사람들 처럼 해외의 멋진 풍경을 보기 위해서도,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구원받고 싶었고 구원을 찾아 떠난 것이다. 이 나라에서 발 붙일 곳이 하나 없다 생각한 그를 붙잡는 이유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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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먼 길을 떠난 적이 있었다. 돌아올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육체적인 것 보다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다. 날파리처럼 떠돌던 내 마음을 내려 둘 곳이 필요했고, 내려 앉기에는 이미 뽀얗게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야만 했다. 그렇기에 나는 우선 이 마음을 비워야 했다.

허나 긴 여행이 끝난 뒤에도 내 몸과 마음은 예상과는 다르게 지칠데로 지쳐 있었고, 마음을 비우기는 커녕 더 복잡해져 얽히고 설켜 끈적지게 달라 붙어 있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모두 즐거울 수만은 없다. 사람들이 즐거워보이는 것은 모두 어두운 면을 가린 허울일 뿐이다. 보여주기를 위한 드라마 같은 허상을 쫓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지천에 깔렸구나. 라고 생각하며 남을 깎아 내리면 좀 편할까 싶다가도 그것에 위안 삼지 못하고 나는 허상을 쫓지 않는다더니 남들 처럼 즐겁지 못한 것을 다 거짓이라고 말하고, 마음을 비운다더니 비우지 못한 욕심을 채우지 못했구나. 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그 실패를 내 탓으로라도 돌려야 할 정도로 나의 심리 상태는 좋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 잃은 개'에서 네오는 살아남았고, 결과론적으로는 승리했다고 말했다. 그 문맥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나에게 있어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끝까지 도망치지 않았고, 내 길을 걸었으니까.

나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아는 사람들은 안다. 하지만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든 독자들이 안다. 이 책에는 정말 가감 없이 그에게 있었던 많은 일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여행기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자서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건과 생각들이 기록되어 있다. 보통 남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을 치부부터 어떻게 이겨냈는지에 관한 허세까지 말이다. 작가가 보기에 씁슬할 수 있겠지만 이 책의 모든 내용들은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즐거울 수만은 없다는 여행관에 대해 슬퍼하던 내게 나보다 더 나쁜 여행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달까? 한마디로 남의 고통이 내게는 위안이 된 셈이다.

 

 

 

이윽고 시간은 어느덧 한밤중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이 사람이 날 죽여서 오토바이를 채가고 달아나면 나는 개죽음을 맞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곳 인도에서, 참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죽으려고 떠났던 놈인데, 또 자살이나 살해 당하는 것이나 죽는건 매 한가지인데, 그 때의 심정은 미친 듯이 살고 싶었다.
이 사람이 자주 시간을 끈다는 생각이 들자 나 또한 빨리 목적지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힌두교도인 점을 감안 했을 때, 나는 이 사람에게 몸짓, 손짓 대화를 시도하였다.
자식은 몇 명이나 있나? 힌두교도인가? 그렇다면 karma(윤회)를 믿지 않느냐? 나 또한 불교신자다.(사실은 무교) 현생에 덕을 많이 쌓아서 다음 생엔 좋은 곳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등. 혼자 이 사람이 알아듣기 쉽게 말을 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인지 몰라도 밤이 깊었으니 차 안에서 자자고 했던 그를 설득시켜 마침내 밤 12시가 다 되어 낄롱에 도착했다. 지금은 담담하게 회고하지만 그때 당시의 8시간은 나에게 공포의 시간이었다. 사람을 못 믿는 자의 '고문'의 대가는 참혹했다. ㅡ길 잃은 개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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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도입에 그는 죽기 위해 떠났다고 했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은 책의 초반에서 그는 그가 죽겠다 마음 먹었던 곳에 일찍이 도착한다. 그리고 그 짧은 기간 동안 그는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간간히 인터넷이 접속되는 곳에서 글을 올리며 근황도 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도움을 구하고, 그녀와 이야기했던 유라시아 횡단에 대한 꿈도 갖는다. '절망 끝에 선 남자의 모터사이클 도망기' 라는 부제를 봤을 때 내용에 비해 제목이 너무 과하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

하지만 자살을 생각하면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고 그 중에 몇 명이 정말 죽음에 닿는가를 생각해 보면 그는 죽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젊은 청년이었다. '길 잃은 개'는 그의 치기 어린 몸부림 끝에 나온 책이란 생각이 든다. 그 만큼 그리고 그(네오) 만큼이나 거칠고 막무가내다.

그 당시 나이대의 청년들이 자신의 꿈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네오는 자신의 절망과 무모함을 거친 방법으로 이야기 했다. 아마 이런 책은 쉽게 쓰여지지도 않을 것이고, 찾아보기도 힘들 것이다. 읽다보면 정말로 길 잃은 개가 이런 심정이겠거니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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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웠던 유럽 여행을 되새겨보니 일주일에 200만원씩 쓴 물질적인 이유가 있었다는 유랑ㅡ'유럽여행의든든한동반자'라는 이름의 인터넷 동호회ㅡ의 글을 보았다. 그렇게 현실에서 벗어나 돈을 쓰면 굳이 유럽게 가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가진것 없이 정말 맨 몸 하나로 말도 통하지 않는 남의 나라에 가서 부딪혀 본다는 것은 정말로 있는거 없는거 다 털어서 사는ㅡ떠나는 교통수단과 가방에 챙긴 짐 그리고 기본 숙식까지 하려면 정말 1원 한푼까지 탈탈 털어 돈을 만들어야 하니까ㅡ 고생이다. 젊어서 사서 하는 고생은 보통 이런걸 두고 얘기하는 거라 생각한다.

아, 그리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굳이 해외 여행을 떠날 필요는 없다. 내가 처한 현실과 떨어져, 더 멀리 떨어져 있다면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감촉이 달라 다른 곳에 온 것 같아 좋기야 하겠지만 내 몸뚱아리를 가져가는 이상 나를 비우는데에 있어서는 장소가 중요치 않다. 그건 어느 조건을 갖다대도 내 마음 먹기에 달렸다.

 

 

 

@길 잃은 개 (절망 끝에 선 남자의 모터사이클 도망기)

장준영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