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 14

산티아고 순례길, 시속 3km

- 하는 일이라곤 걷는 것 밖에 없을거라 생각했다. 오늘, 내일 그리고 그 다음날도 걷고, 또 걷고. 하지만 나에겐 하루 일과가 있었다. 생각치도 못했던 일.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800km를 걷는다는건 생각보다 계획이 필요한 일이었다. - 어디로, 언제까지 걸을 것인가? 산티아고까지 걸을 것이다. 내 몸이 허락하는한 끝까지 걷고 싶다. 산티아고 추후 일정은 정해지지 않기에 일정에 여유는 많은 편이다. 산티아고까지 약 800km가 안되는데 그렇다면 하루에 얼마나 얼마동안 걷는가? 내 몸의 컨디션과 길의 난이도를 고려하여 하루에 2, 30km 씩 걸으려고 한다. 중간에 하루 이틀 씩 쉴 것을감안해서 총 일정 3, 40일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다. 묵을 숙소는 정했..

산티아고 순례길, 뿌연 안개 속 텅빈 머리 통

- 새벽에는 어젯밤 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고, 피레네의 날씨는 여전히 예측할 수 없었다. 기상 예보에선 오늘, 내일이 지나야 날이 갤 것 같다고 했다. 겨울에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갈 때 예측할 수 없는 날씨 때문에 길이 통제되는 기간도 있다고 들었고, 얼마전에는 눈이 내렸다는 걸 들었기에 신경이 곤두섰다. 워낙에 첫 날부터 높은 산을 넘어가야 하는데다가 27키로미터는 가야 숙소가 있기 때문에 중간에 돌아올 수도 없다는 점을 고려해봤을 땐 따져봐야 하는게 많았다. 어제와 같이 길에서 바들 바들 떨고 싶진 않았다. - 길이 통제 된 건 아니니 위험하지 않을 거라, 이 정도 비라면 걷는데 무리도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출발한 사람들도 있었기에 그들을 따라 가다보면 길은 헤매지 않겠지. 우비를 입을까하다 옷만..

산티아고 순례길, 잊을만하면 그는 내 뒷통수를 친다.

- 올해 초 나는 심신이 꽤나 약해져있던 상태였다. 일은 힘들었고, 내 마음은 더 나약해졌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을 그만두고,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고, 한달 동안 집안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 뒤에. 나는 가진 돈을 탈탈 털어 파리로 출발했다. 파리는 나의 로망을 가진 도시였고, 순례자의 길은 나의 도피처였다. 내가 바라는건 파리의 로망을 지키는 것이었고. 순례자의 길에서 내가 가진 모든 잡념을 버리고 오던지, 생각을 비우던지, 아니면 해결책을 찾는것이었다. 뭐라도 하나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랬으면 싶었다. 정말 단 하나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 지푸라기 잡는 심정 치고는 너무 멀리까지 온거 아닌가 싶었지만. 한국 사람들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