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겼었던 것/책

언니에게 보내는 행운의 편지

MUSON 2022. 3. 9. 18:11

언니. 잘 지내요?

가끔 늦은 밤에 뜬금 없이 전화 하고서는 한 시간, 두 시간 자기 얘기를 줄줄 얘기하던 언니가 생각나네요.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서 듣고 있다보면 언니는 '그냥, 생각나서.' 라고 대답했었죠.
그럴 때 마다 심심했나?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얼마전에 SNS 에 올린 글을 언니는 화두로 삼았죠.
근데 언니. 거기에 내 얘기는 없었어요.
시작은 분명 내 얘기였던거 같은데 그 주제로 언니는 본인 얘기를 계속 꺼냈죠.
얼마전에 있었던 고객사와 있었던 얘기, 서른 살을 마주보고 있었을 때 무시 당했던 일, 십년 전에 모르고 지나갔던 연인의 가스라이팅 얘기까지.
이 사람은 도대체 그런 얘기를 나한테 어쩜 이렇게 쉽게 얘기하지?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내가 그 매번 연락 할 때마다 그 얘기 하는거 아냐고도 물어봤는데. '내가 그랬나?' 라고 대답하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전화했나보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죠.

시시콜콜하면서도 다르게 보면 심각했었던 일들도 있었어요. 그때 괜찮았냐고 물어보면 언니는 그땐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본인이 무지해서 그랬었다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언니의 다른 언니들한테 조언을 많이 들었다고. 그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해가 된다고. 어렸을적에는 몇시간을 붙잡고 있었던 수학 문제도 몇 년 뒤에 보면 쉽게 잘 풀리지 않았냐며 그 동안 다른 공부들도 하다보니 자연스레 이해력이 높아지는거 같다고 했어요.

언니가 본인도 읽지 않았으면서 나한테 필요할거 같다고 우리집으로 보낸 책이 아직도 그대로 있어요.
한번 훑어보기는 했는데... 글쎄요. 손에 잡히진 않아요. 그래도 커버는 예쁜거 같아요. 언니가 다 읽고 나면 한번 빌려달라고 했는데. 나한테 읽어보라고 숙제 내 준거라는거 알아요. 그래도 언니가 매번 하는 말 있잖아요. "오늘 일은 내일로."

내가 보기에 언니는 그래도 참 좋은 사람 같은데. 왜 연애를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안하는게 아니라 못 하는거라고 매번 얘기하지만 내가 볼 땐 아닌거 같아요. 빨리 애인이 생겨야 늦은 시각에 전화하는 일이 없을텐데 말이죠. 보고 싶다고,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고 얘기 해 주는건 좋지만 저는 집에서 늘어지게 잠만 자는게 제일 좋아요.

언니의 이름을 불러 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