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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

MUSON 2022. 4. 1. 01:57

노부는 아들이 참여한다는 행사가 궁금했다.
어떤 이유로 아들이 초청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다양한 연령대를 대상으로 한다니 그것만으로도 더 이상의 궁금증은 생기지 않았다.
다른 이들과 함께 있는 아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집을 나서는 길은 그리 좋지 않았다.
구름이 하늘을 메우고 있어 점점 어둑해져 가는 듯했다.
아침부터 일찍이 나간 아들이 우산을 가져갔는지 알 길이 없었으나 지팡이 대신 들고 나온 구부러진 손잡이를 가진 우산이 걱정을 덜어주었다.
느릿하게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을 기다렸다.
문이 열렸을 뿐인데 저 멀리 환한 빛이 보였다.
그는 자연스레 빛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아버지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비도 오는데."

 

지하철을 타고 오는 동안 결국 비가 오기 시작했나 보다.
촬영 중이라 켜놓은 태양 같은 조명 때문에 빗방울이 보이지 않았다.

 

"비 와."

 

우산에 실었던 몸을 아들 팔에 기대고 나서야 빗방울에 옷이 젖었다는 걸 알았다.
아들은 자연스레 우산을 건네받았고, 노부가 앉을 곳이 없는지 주변을 살폈다.

 

"날도 추운데 감기라도 걸리시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그리고 여기가 어디라고 여기까지 오셨어요? 우산이야 가는 길에 사도 되는데!"

 

노부의 시선은 조명 너머의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잘 보이진 않지만 키가 작은 사람, 덩치가 큰 사람, 그리고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잔뜩 서 있었다.
확실하진 않아도 다들 자신을 보고 있는 듯했다.

 

"가서 일 봐. 갈 테니께."

 

가까스로 아들의 팔에서 손을 떼고는 몸을 돌렸다.
몸이 젖어서인지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몸에 한기가 서렸다.
지하철역은 그리 멀지 않았다.

 

"이거 가지고 가세요."

 

"전철 타고 가면 돼."

 

"금방 안 그칠 거 같은데 집까진 어떻게 가시려고요? 고집 피우지 마시고 그냥 가지고 가세요."

 

아들은 화가 났는지 발을 크게 굴렀다.
길 옆에 작게 조성된 개울가에 쌓인 바위더미가 무너지는 듯했다.
아들의 얼굴은 피곤에 쌓여 있었지만 눈빛엔 화가 흘렀다.

 

"제발! 좀!"

 

어느 때처럼 서로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등을 돌려 가는 노부의 어깨를 아들이 잡아 돌렸다.
힘이 세게 들어가진 않았지만 자신을 돌아보게 하기엔 충분했다.
노부는 발을 내려놓으려던 자리에 놓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내디뎠다.
그는 그대로 넘어졌지만 아들의 팔은 아까보다 더 빠르고 강하게 노부를 잡아 들었다.
빗발에 젖기 시작한 옷은 한쪽만 흠뻑 젖었다.
큰 발걸음으로 개울로 내려간 아들은 빗물인지 개울 물인지에 젖어 늘어진 노부를 챙겼다.

 

"그러니까 집에 있으라고 했잖아! 왜 밖으로 나오냐고!"

 

아들은 바닥에 깔린 커다란 돌덩이 하나를 양손으로 힘들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려치고, 들어 올리고, 내려치고를 반복했다.
개울가의 물이 불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