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았던 곳/해외

산티아고 순례길, 앞을 보고 걸을지 발을 보고 걸을지

MUSON 2021. 12. 17.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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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를 참 많이도 봤다.
내가 평생 볼 달팽이들을 다 보지 않았을까.
난 그냥 돌맹인줄 알았는데 그게 다 달팽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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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없는데 토실 토실하게 생겨서 꽤나 몸 집이 큰 까만색 민달팽이.
이 녀석 이름이 뭘까?
찾아 봐야지 찾아봐야지 했는데 아직도 안 찾아봤다.

내일은 꼭 찾아봐야지.

 

 

 

Camino de Santiago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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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달팽이 한마리를 만났다.
이 마른 땅을 위에 어쩌다 올라왔는지.
쳐다보고 있으니 부지런히 속도를 내어 기어간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조금도 돌아가지 않고.
무조건 앞만 보고 간다.

돌맹이 하나가 길을 가로 막았다.
뾰족하게 생긴 못생긴 돌이었는데.
그걸 피해가지 않고 기어 올라 결국 넘어 간다.
몰랐던걸까. 알면서 그랬던걸까.
앞만 보고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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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걸어가서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그 목적지에 원하는게 없으면 어떻게할거야.
가다가 죽으면 어쩌려고 그런 무모한 짓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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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 오고 싶어서 왔는데.
너는 왜 왔어?

 

 

 

Camino de Santiago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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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가 정말 많다.
아스팔트 위에 뿌려진 자갈 마냥 정말 작은 달팽이부터 커다란 달팽이까지.
비가 와서 그런지 이 동네 달팽이 들이 모두 소풍 나왔나보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디딜 때마다 달팽이를 밟을 까봐 조심 스럽다.
앞을 보고 가야하는데 땅만 보고 걷고 있다.
조심스레 땅을 보고 걷고 있으니 달팽이도 보이고, 달팽이었던 것도 보인다.

발을 뗄 때 마다 계란 껍질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게 돌이 부딪혀서 나는 소리인지 달팽이 집이 부서지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내 옆으로는 다른 사람들도 걷고 있고, 자전거도 지나가고, 자동차도 지나간다.

죽기는 이리도 쉽고.
살기는 이렇게나 어렵다.
죽고 사는데는 조건이 없다.
운 좋으면 사는거고, 운 나쁘면 죽는거다.
그냥.. 재수가 없던거다.

 

 

 

Camino de Santiago 2016
Camino de Santiago 2016
Camino de Santiago 2016
Camino de Santiago 2016
Camino de Santiago 2016
Camino de Santiago 2016
Camino de Santiago 2016
Camino de Santiago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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