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신뢰라는걸 수치화 시켜서 눈으로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인복은 많지만 친구가 많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헌데 내가 호주에 간다고 이야기 했을 때 무슨 이유인지 여기 저기에서 가기 전에 보자는 연락들이 왔다. 그리고 그에 휩쓸려 나도 그들에게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러자고 대답했다.
전에 내가 그냥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한국을 떠난다고 이야기 했을 때도 나는 그리 신경쓰지 않았다. 평소에도 보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평생 못 볼 사람도 아니었다. 언제고 다들 한국에 들어올 사람들이었으니 유난떨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섭섭한 소리를 해대는데 내가 한술 더 떠 거들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호주에 간다고 이야기 했을 때도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연락도 안닿는 곳에 가서 생사확인도 못하는 곳에 가는 것이 아닌 이상 그런게 필요가 있을까.
10월 내내 만남의 연속이었다. 눈을 떠서 누군가와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는 헤어졌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서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는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새벽까지 잠들지 않았다. 하루가 너무 짧았지만 뭔가 허무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뭔가 답답한 마음에 이게 뭔지 아냐고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친목질'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건 상대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 상대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만남은 물론이거니와 연이 닿을 수 있는건 피하고 본다. 내게 좋지 않은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보통 내게 이익을 주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칭하고 해를 주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칭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좋은 사람을 옆에 두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 예를 들면 '시간' 같은 것 말이다. 상대에게 내 시간을 투자하다보면 상대도 내게 그 사람의 시간을 투자하곤 한다. 사람은 상대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하고 준 만큼 받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간단한 방법으로 서로의 시간을 나누곤한다.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말들을 듣고 있자니 귀에 딱지가 얹히는 것만 같았다.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and you?" 만큼이나 쓸모 없었다. 괜찮냐고 물어보길래 괜찮다고 얘기 했다. 다른 대답을 하기엔 쓸데 없는 대화만 길어질 것 같았고 상대를 당혹시키게 만들것 같아 그러지 않았다.
그러다 친구를 만났다. 호주간다는 나에게 호주이야기를 줄창해댔다. "어디서 들었는데", "어디서 봤는데", "누가 그랬다더라", "누구는 그렇다더라" 그러다가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겪어보고.. 잘 다녀와." 라고 말해주었다.
선약도 취소하고 만났고, 바쁜 시험기간에 멀리까지 나와 만났고, 연인과의 데이트 약속도 미루고 만났고,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만났고, 모르는 사람과 불편한 자리가 될 것 같았지만 감수하고는 타인과 함께하며 만났다. 자신이 해야하는 것을 하나 버리면서까지 나를 만나러 나와 주었다. 당분간은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할거라며 나를 만나러 나와 주었다.
그리곤 거기 가면 못 먹을거라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고 자신이 몫으로 나온 음식도 내어주었다. 필요하거나 그리운게 있으면 EMS로 보내주겠다며 약속했다. 그게 평소엔 얼마나 작은건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의 나에겐 굉장히 크게만 느껴졌다.
도저히 수치화 할 수가 없다. 내가 친구를 믿고 신뢰하지만 이걸 그 친구가 느낄 순 있어도 정확히 알 수 없고 눈으로 볼 수 없듯이 나 또한 그렇다. 그냥 나와 친구 사이엔 무언가 끌어 당김 같은 것이 있다. 이걸 뭐라고 형용할 수는 없으나 어차피 언어로는 표현 할 수 없는 것 들이 많으니 구지 이야기 하지 않겠다. 알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쉬운거지만 국어사전엔 없는 말이다.
만약 이것들을 수치화 할 수 있었다면 아마 우리는 친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욕심이 많고 그 끝이 없어서 자신이 투자한 것에는 꼭 보상을 받고자한다. 분명 나는 너에게 10을 줬으니 너도 나에게 10을 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수치화 할 수 없으니 다행이다. 아마 내가 너에게 10을 줬다고 하더라도 네가 나에게 1만 주었다면 나는 아마 굉장히 섭섭했을 것이고 실망했을 것이다. 헌데 이걸 눈으로 보지 못한다니 이 만큼 다행인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