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았던 곳/해외

산티아고 순례길, 시속 3km

MUSON 2021. 12. 17.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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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이라곤 걷는 것 밖에 없을거라 생각했다.
오늘, 내일 그리고 그 다음날도 걷고, 또 걷고.
하지만 나에겐 하루 일과가 있었다.
생각치도 못했던 일.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800km를 걷는다는건 생각보다 계획이 필요한 일이었다.

 

 

 

Camino de Santiago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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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언제까지 걸을 것인가?
산티아고까지 걸을 것이다. 내 몸이 허락하는한 끝까지 걷고 싶다. 산티아고 추후 일정은 정해지지 않기에 일정에 여유는 많은 편이다.

산티아고까지 약 800km가 안되는데 그렇다면 하루에 얼마나 얼마동안 걷는가?
내 몸의 컨디션과 길의 난이도를 고려하여 하루에 2, 30km 씩 걸으려고 한다. 중간에 하루 이틀 씩 쉴 것을감안해서 총 일정 3, 40일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다.

묵을 숙소는 정했는가?
매일, 매 순간을 이동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정해진 숙소는 없다. 그 날 그 날 다르다. 다음에 갈 마을이 비교적 크고 공립 알베르게가 저렴한 편이라 그 곳에서 묵고 싶다. 하지만 그렇기에 사람들이 붐빌 것으로 예상되고 도착 했을 때 침대를 배정받지 못한다면 그 다음 마을까지 갈 생각이다.

하루 식사는 어떻게 하는가?
숙소에서 조식을 주는 곳도 있는데 보통 6시나 7시 사이에 준다. 그걸 먹고 나오면 7시가 넘어야 출발할 수 있는데 유럽인들은 아시아인들과 비교했을 때 체력이 좋아 충분히 그 때 조식을 먹고 출발해도 1시 이전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좀 더 걸리기에 아침에 먹을걸 미리 준비해두고 조금 더 일찍 출발한다. 숙소에 도착해서 침대를 배정 받으려면 같이 출발하는 유럽 친구들 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중간에 과일이나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래고 숙소에 도착하면 장을 봐다가 저녁을 해먹거나 사 먹는다.

목적지에서 침대를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침낭은 있지만 비박을 할 준비는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모든 짐을 지고 걷기 때문에 비박 준비까지 하다보면 짐이 더 늘게 된다. 알베르게가 꽉 차서 침대 배정을 받지 못한다면 다음 마을까지 걸어야 한다. 시에스타 시간이라 햇빛이 강렬하겠지만 어쩔수가 없다. 다음 마을은 5키로 정도 떨어져 있다. 약 2시간 정도 더 걸어야 한다.

몇 시에 도착할 것을 예상하고 있나?
시에스타Siesta 시간 전에 도착하려고 한다. 1시가 넘어가면 해가 너무 강해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몇시에 출발할 예정인가?
중간에 쉬는걸 계산했을 때 시간당 3키로씩 간다고하면 7시간 정도 가야하고 중간에 오르막 경사가 있는걸 감안하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러니 5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숙소에 도착하면 무엇을 하는가?
우선 씻고, 빨래를 한다. 간단한 속옷이나 양말 같은건 손세탁을 하지만 외투같은건 세탁기Lavadora 가 있는 곳에선 세탁기를 돌린다. 한 낮에 빨래를 널기 때문에 건조는 따로 하지 않아도 되지만 만약 날이 안좋다면 건조기Secadora 를 돌리는데 보통 세탁기나 건조기가 한대씩만 있는 곳이 많아 대기 시간이 길다. 빨래를 하고나면 밥을 먹는데 주방이 있는 곳에선 음식을 해먹을 수가 있는데 그런 곳에는 사람들이 붐벼 불을 쓰기가 쉽지 않다. 여의치 않으면 근처 식당에서 순례자 식단을 먹는다. 그리고 그 날의 컨디션을 고려해 다음날 일정을 짠다.

다음날 일정은 어떻게 짜는가?
그 날의 컨디션, 거리, 경사를 감안해서 다음 마을을 정한다. 편의 시설이 필요하다면 큰 마을에서 쉴 때도 있다. 약국이나 슈퍼가 없는 작은 마을도 있어 필요한게 있다면 미리 챙겨야 한다. 그리고 침대가 많은 곳도 있고 적은 곳도 있어서 사람들이 붐빌지 아닐지도 고려해봐야 한다. 자칫 잘못해서 침대를 배정받지 못한다면 다음 마을까지 가야 할 수도 있는데 다음 마을이 5키로 이후에 나올지, 20키로 이후에 나올지 미리 알아보고 가야한다.

일정에 여유가 많은 편이라고 했는데 하루 일정이 타이트 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마음 먹기 달린 것 같다. 신경쓰지 않고 막무가내로 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아프거나, 길을 잃어버린다면 그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조심하고자 한다.

 

 

 

Camino de Santiago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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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디까지 걸을 거야?"

"내가 그만 걷고 싶을 때 까지."

 

 

 

Camino de Santiago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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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해가 이렇게나 높이 떠 있는데 어디까지 갈 생각이야?"

"글쎄. 그냥 갈데까지 가보려고. 중간에 피곤하면 거기서 쉬지 뭐."


"언제까지 걸으려고?"

"해 지면..?"


"갔는데 숙소가 없으면 어떻게?"

"괜찮아. 나한텐 원터치 텐트가 있거든!"

 

 

 

Camino de Santiago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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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자면 안 불편해? 땅도 고르지 않고.. 추울것 같은데."

"전혀! 자기 전까지 별 보고 자는걸 나는 정말 좋아하거든. 너도 한 번 해보면 홀딱 반할걸? 아, 그리고 만약 나중에 네가 에어매트리스를 사야한다면 꼭 이걸 사도록 해. 정말 좋아!! 땅에서 찬기운이 올라오는걸 막아줘서 새벽에 침낭만 덥고 자는데도 더워서 깬다니까!! 정말 최고야!!"

 

 

 

Camino de Santiago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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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여기까지 걸을거야.

두꺼운 옷을 빨아야 해서 세탁기도 써야 하고.
가방에 있는 먹을것들이 상하기 전에 먹어야되서 주방도 써야 하고.
새벽에 비가 온다고해서 따뜻하고 편하게 자고 싶은데 생긴지 얼마 안된 알베르게라 시설도 좋아.

다음 마을엔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고, 마트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걷고 좀 쉬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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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기하지 못하는게 왜 이리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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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미래를 걱정하며 지금에 안주하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