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았던 곳/해외

산티아고 순례길, 잊을만하면 그는 내 뒷통수를 친다.

MUSON 2021. 12. 17. 00:05

-
올해 초 나는 심신이 꽤나 약해져있던 상태였다.
일은 힘들었고, 내 마음은 더 나약해졌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을 그만두고,
누구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고,
한달 동안 집안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 뒤에.
나는 가진 돈을 탈탈 털어 파리로 출발했다.
파리는 나의 로망을 가진 도시였고, 순례자의 길은 나의 도피처였다.

내가 바라는건 파리의 로망을 지키는 것이었고.
순례자의 길에서 내가 가진 모든 잡념을 버리고 오던지, 생각을 비우던지, 아니면 해결책을 찾는것이었다.
뭐라도 하나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랬으면 싶었다.
정말 단 하나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
지푸라기 잡는 심정 치고는 너무 멀리까지 온거 아닌가 싶었지만.
한국 사람들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을까.
그 사람들이 내게 어떤 조언을 주진 않을까 하는 바람에 떠난 길이었다.
호주에서 지낼 때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나의 존중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파리에서는 카우치 서핑으로 좋은 호스트를 만나 좋은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과도 금방 친해지는 성격에 파리에서 혼자 다녀도 외롭거나 불편한 점은 없었다.
그런데 뭐 때문인지 가방은 자물쇠로 꼭꼭 잠구고 다녔고, 해가 지기 전에는 숙소로 돌아갔다.
테러가 일어난 뒤의 파리라 길에서는 무장한 군인들이 자리잡고 있어 소매치기나 위협은 눈을 씻고 봐도 볼 수 없었고, 파리의 낭만을 즐기는 관광객들은 여전히 많았다.
헌데 내 마음은 파리의 낭만을 느끼기엔 얼어버린 유리창 처럼 바람이라도 불면 깨질 것 만 같았다.

결국 나의 로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루에 20키로씩 걸어가며 나는 낭만을 찾아 파리를 헤집고 다녔다.
그러나 나에겐 그 낭만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는걸 파리를 떠날 때야 깨달았다.

잃어버린 내 여유를 되찾자.
생장 피 드 포르로 가는 기차안에서 생각했다.
여유롭게 걷자.
까미노를 걷는 데에만 집중하자.
길 위의 나를 그가 지켜주시리라 믿었다.

 

 

 

Camino de Santiago 2016

-
저녁께나 생장 피 드 포르에 도착했고 출발을 기념하는 기차역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사람들을 보았다.
그냥 갈까 하다가 다들 여기에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모습이 좋아보여 그들을 따라 나도 혼자서 기차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다들 얼마나 기뻐하는지 나도 그들을 따라 웃었지만 사실은 마음이 조급했다.

순례자 여권을 받고, 여행에 필요했던 짐을 받고는 숙소를 찾아 다녔다.
헌데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ㅡ알베르게ㅡ가 어느새 가득 차 버린 것.
시간도 늦었고 내가 엄선했던 숙소는 순차적으로 마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안내 지도에 있던 숙소가 없어지면서 나는 외딴 곳에서 숙소를 찾지 못한채 길을 헤매였다.
보슬 보슬 비가 오고 있었고 이미 해는 지고있었다.

그렇게 내가 비를 맞으며 길을 헤매고 있으니 동네 마실 나오신 현지분이 같이 빈 곳이 있는지 찾아봐주셨지만 결국 시간은 늦었고 끝내 나는 숙소를 구하지 못했다.
그는 어쩔수 없다며 혹시라도 비를 피하고 싶거든 어디에 창고가 있으니 정말 필요하다면 그 곳에 가보라고 알려주시기까지 했다.
늦은 밤 1시간이나 같이 비를 맞으며 동네를 같이 둘러봐주던 그에게 정말 감사했지만.
내일 새벽 같이 일어나 산을 넘어야 하는 나에겐 순례길 첫 날 부터 비박하며 이 밤의 추위를 이길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밤하늘 만큼이나 정말 눈 앞이 캄캄해졌다.

이렇게 된 거 숙소를 찾는데 급급해서 하지 못했던 이 작은 마을을 구경이라도 해봐야겠다 싶었다.
아까는 그냥 지나쳐 갔던 곳 들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작은 마을이라 불이 켜진 곳이 별로 없어 대로변 쪽 가로등을 쫓아갔다.

가로등 빛을 쫓아간 곳에서는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한국 말들이 들려왔고.
아까 기차에서, 길에서 마주쳤던 한국 사람들이 테라스에서 밥을 먹고 난 뒤 같았다.
그리고 나는 혹시나 하며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을 걸었다.
내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해주고 말이 통하는 사람이 눈 앞에 있었다.

그들 또한 순례자들을 위한 숙소ㅡ알베르게ㅡ를 잡지 못해 결국 값비싼 호텔을 잡았는데 그 마저도 본인들이 들어가니 꽉 차버렸다고 했다.
'아, 내가 못 찾은게 아니라 정말 숙소가 없는 거구나.' 라는 자기 위로로 나를 달래보았다.
그들은 내 상황이 자신들에게도 곤란하게 느껴졌는지 서로 이야기를 하다 내게 말을 건냈다.
'괜찮으면 침대는 없지만 호텔룸 안에서라도 자는게 어떻겠어요?' 라고 손을 내밀어 주었다.
이 밤에 씻을 곳과 비를 피할 곳이 있다면 내가 어디든 마다 하겠는가.
호텔 로비 직원의 눈길을 피해 몰래 그들과 함께 호텔 객실로 들어갔다.

 

 

 

Camino de Santiago 2016

-
나에겐 카미노를 시작하기도 전에 눈물 날 뻔했던 사건이었다.
앞으로 한달이 넘도록 800키로 미터를 걸어 나가야 하는데 이 머나먼 타국에서 잠을 청할 곳도 없다니.
그날이 내 기분이 어땠는지 잠들기 전에 침낭 위에서 쓴 일기는 정말 복잡했다.

그는 내게 이런 시련을 주고 내가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알고 싶었을까?
하지만 결국 그는 내게 빛을 내주었고 나는 그를 쫓아갔다.
내가 무너지기 전 까지 지켜보던 그는 다시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허나 지금 생각해보면 카미노가 끝난 뒤, 다시 일상 생활에 돌아온 내가 그 때를 돌아보니 고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그에게 여러번 뒷통수를 맞았다.
도대체 그는 내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그리 쉽지 않을거라는걸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그 시련 속에서도 본인이 잘 보살펴 줄 거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