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착륙

MUSON 2019. 11. 17. 21:06

@LCCT Kuala Lumpur International Airport

비행기를 타본 적이 몇 번 없는데 탈 때마다 어떻게 창가 쪽 자리에 앉거나 비상구 앞에 앉는다. 운이 좋은 건가. 그렇게 앉아 창 밖을 보고 있으면 내가 탄 항공사의 로고가 박힌 날개가 보인다. 그리고 이륙. 비행. 착륙. 그 시간 동안 창 밖을 보고 있으면 항공사의 로고도 비행기의 날개도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가만있는데 지구가 움직이다. 라는건 헛소리고. 커다란 날개 밑에 붙은 작은 날개들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저렇게 얇고 연약해보이는 날개가 어떻게 이 커다란 몸체를 지탱하고 있는지 참으로 신기하다. 작은 새가 날아다닐 때에도 수십 번 날갯짓을 하는데 이 녀석은 그냥 까딱이며 움직인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게 그렇게 작게 움직이는데도 비행기는 정말 크게 움직인다. 새는 값이 얼마 안 나가는 벌레를 먹고살아서 그런 건가. 비싼 기름 먹고살면 비행기처럼 큰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이 궁금점은 새에게 금칠한 벌레를 먹여봐야 알 것 같다.

작은 날개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불안할수가 없다. 움직이고 싶어서 움직이는게 아니라 바람이 강하게 불어 덜렁거려서 움직이는 것 같아 보인다. 그땐 내가 상공 몇 미터 위에 떠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사고로 비행기가 추락한다면 그냥 즉사 시켜주세요. 라고 속으로 빌게 된다. 드라마 LOST를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보니까 재미있지 체험하고 싶진 않다.

그렇게 계속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날개 밑에 짙은 땅덩어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초록 나무들도 있고, 검붉은 모래들도 있고, 색색의 건물들도 보인다. 이제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구름속에선 그냥 웃어넘기는 작은 에피소드였다면 지금 눈에 보이는 건 그냥 소문으로 떠돌던 정리해고 소식이 어느새 상사가 날 따로 보자며 부르는듯한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별의별 상상을 다 하며 내가 여태껏 써왔던 시간들이 촤르륵 머릿속을 지나간다.

그렇게 비행기는 착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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